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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의병 군번 없는 영웅, 호국의 별 독수리 유격대를 아시나요?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윤춘근 회장님을 만났다.

시민기자 박광복


ⓒ시민기자 박광복

정전협정 기념일 포천시 행사가 있는 7월 27일 보훈회관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윤춘근 회장을 만나 그때의 생생한 증언과 유가족들의 의미 있는 기부 및 희망을 전해 들었다.

여기서 6·25 전쟁의 기록을 잠시 소개한다.

1950년 1월에 미국의 에치슨라인을 발표하고, 6월에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 유역까지 속수무책 후퇴를 했다. 그 후 16개국으로 구성된 UN군이 파견되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서울을 9월에 수복하고 평양, 원산,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으나 10월에 중공군에 개입으로 38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양측에 13,500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무시무시한 전투가 벌어지는 상태였다.

ⓒ시민기자 박광복

포천에 63인의 독수리 유격대는 63명으로 자원입대한 군번 없는 용사들로 구성됐다. 1박2일의 제식훈련과 사격훈련만으로 최전방에 투입되어 국군에 첨병으로 전투에 투입됐다. 373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고지를 탈환하는 전과를 이뤘다. 이 전투에서 송완희 소대장을 포함해서 9명이 전사하고, 374고지에서 김익수 대장이 중공군에 포로가 되는 등 큰 상처를 입었다. 특공대는 25%의 대원을 조국의 역사에 바치고서야 귀향할 수 있었다.

그 후 용사들은 군복무로 인정되지 않아 다수의 용사들은 현역으로 징병되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였다. 생존해 계신 박흥진 회장님의 생생한 전투 증언으로 군번 없는 독수리 유격대의 활약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시민기자 박광복

독수리유격대 기념사업회 초대회장님은 우리는 군번 없는 유격대, 자랑스러운 포천의 의병이었다. 양평에서 8사단과 전후방 임무 교대를 한 후, 화야산에서 설악동, 청평발전소 현리, 하판리 상판리, 샛말, 청계산, 강씨봉, 도성고지, 백운산, 광덕산 하오고개, 육단리, 사곡리 천불산을 거치면서 금화 지역 전투에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출처-호국성 독수리유격대)

1953년 7월 27일 미국과 유엔, 북한과 중국이 본문 5개조 63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에 서명했다. 만 3년 2개월 2일간 계속된 민족 비극에 전쟁이었다.

ⓒ시민기자 박광복

윤춘근 2대 회장님은 유격대원은 포천을 사랑하고 철저한 반공 투사들이었다. 전쟁터 포천지역에서 1950년 포천에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궐기했다. 지금은 전투현장에 기념비도 세우고 "독수리유격대 현충공원"을 호국안보 성지로 거듭나게 혼신에 노력을 다하였다. 이제는 포천의 시민들이 전사하신 16명의 명복을 빌고 생존해 계신 영웅들과 63인의 자손들을 보살펴야 한다. 안보, 문화, 인권이 살아 있는 포천시에 자존심을 누가 지켜줄 수 있나. 윤춘근 회장님의 말씀과 표정은 영웅들의 존경과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보훈회관에 입주해 계신 포천시에 영웅들을 기억한다. 정부에서 인정 못해주는 안타까운 현실에 윤춘근회장님과 후손들이 직접 나서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군단에 부지를 반환받고 탱크 저지 탑을 제거하는 행정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국 수호의 선봉에서 전사한 사람들과 후손들은 우리가 지켜드려야 한다. 민주국가의 정신은 최소한 지켜드리자.

기념사업을 자비로 기부금으로 이어가는 윤춘근 회장님과 유족들을 이제는 포천시 행정도 돕고, 포천시민들의 관심도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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