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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공예 축제를 여는 것은 어떨까?

시민기자 서상경

 

“카페야 식당이야?”

국립수목원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직동삼거리에서 만난 ‘국수카페’다. 내부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차를 마시면 카페요 국수를 먹으면 식당이다. 실내는 전등불빛이 은은하고 닥종이로 만든 공예품들이 갤러리를 연상하게 한다. 사연을 물어보니 이곳의 안주인 전흥자 여사는 고려닥종이공예협회 회장이다. 닥종이는 닥나무로 만든 고려지 즉 한지다. 1962년 우리나라 전통의 종이가 한지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까지 창호지, 고려지 등으로 불렸다. 일본은 화지, 중국은 선지라 부른다. 종이의 재료는 뽕나무껍질도 있고 갈대도 있었지만 닥나무가 가장 흔하게 쓰였다. 그래서 닥종이로 만든 한지에 염색을 하고 공예품을 만든다. 전흥자 회장이 닥종이공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시점이다. 그런데 한지에 염색을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통도사의 한 스님이 전국의 염색 전문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천연염색을 배우게 된다. 이후 ‘청대 분말을 이용한 한지 염색에 관한 연구’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지공예는 전지공예도 있지만 꽃을 만드는 지화공예, 책을 엮어서 기물을 만드는 지승공예, 그리고 지호공예가 있다. 지호공예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쳐준 근대공예다. 이외에도 불교지화, 무속지화 등이 있지만 민간에서 전승되어오던 지화공예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어릴 적 어머니가 전수해 준 지화공예로 기억을 되살려냈고 꾸준히 공부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1998년에는 고려닥종이공예협회가 설립되었으며 회장직도 맡게 되었다. 그동안 3500여 명에 달하는 제자들이 양성되었고 전국의 문화교실 등에서 지화공예를 강습하는 일이 흔하게 되었다.

▲국수카페ⓒ시민기자 서상경

포천은 전통공예와 무관하지 않은 지역이다.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의 집안이 세거한 지역으로 7대 조상이던 서성의 묘가 있다. 임원경제지는 시골생활에 필요한 실용지식을 정리한 실용백과사전으로 사대부가 직접 생업에 뛰어든 예는 거의 없다. 서유구의 형수는 규합총서를 쓴 빙허각 이씨다. 용산에서 서유구의 집안으로 시집을 와 쓴 것으로 거기에는 옷 만드는 법, 물들이는 법, 길쌈, 수놓기, 누에치기 등 가정 살림에 관한 온갖 내용이 들어있는 여성 백과사전이다. 적어도 이 사람들은 포천에서 활동하고 포천과 관련이 없지 않다.

또한 포천은 한지를 많이 뜬 지역이다. 영중면 금주리에는 지금도 닥밭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닥나무가 무성했기에 유래되었다. 임원경제지를 쓰도록 바탕이 된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고 닥밭이라는 지명이 있었던 곳. 전흥자 회장은 1989년 포천 직동리에 자리를 잡았다. 한때 닥나무 묘목을 심고 번성을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천연염색과 지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혼자서 공부를 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도 그 때문이다. 1998년부터 염색장을 만들어 작업을 하고 체험을 실시했다. 닥종이공예 갤러리도 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대한민국 CEO 대상, 으뜸 경기인(천연염색부분), 포천시에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대한민국 한지천연염색 명장이다.

▲닥종이공예ⓒ시민기자 서상경

포천에 자리 잡고 천연염색과 닥종이공예에 연구에 매진하면서 관련 분야의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건칠불 연구다. 많은 사람들이 닥종이공예를 현대공예로 알고 있지만 불상을 만드는 데도 닥종이가 들어갔다는 것은 잘 모른다. 건칠불은 옻칠을 삼베 위에 두껍게 바른 뒤 건조시켜 만든 불상을 말한다. 불상이 한지로 만들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불상도 오래되면 벗겨지고 색이 바래진다. 그때는 다시 덧칠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개금이라고 한다. 이때 종이불상인지 나무불상인지 금속불상인지 안다는 것이다. 의성 고운사, 경주 기림사, 양양 낙산사, 강화 정수사, 봉화 청량사, 영덕 장륙사 등의 건칠불을 직접 확인했다. 의령 봉수면에는 조상 대대로 한지를 뜨는 집이 있다고 하여 새벽에 찾아가기도 했다. 봉수면에는 옛날부터 벽지 만드는 공장이 많았던 곳이다.

일본을 방문하여 화지도 보고 중국에서는 선지 만드는 것도 살펴보았다. 선지는 짚풀 속에 있는 단단한 심을 삭혀서 닥나무에 섞어서 만든 것이다. 공장 속을 볼 수 없도록 해서 삭힌 선지를 한 가닥 주워서 가져오다가 곤욕을 치를 뻔했다. 어쩌면 우리나라 한지에 미쳐있다고 해도 좋겠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공예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는지 중국의 관련자가 찾아와서 우리나라의 한지공예에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중국과 이 분야에서 교류를 할 수 있는 길이 생길지도 모른다.

▲직접 쓴 건칠불과 닥종이 인형 책ⓒ시민기자 서상경

▲닥종이공예 내용을 정리한 책의 모습ⓒ시민기자 서상경

우리의 전통문화는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그래서 경험을 바탕으로 ‘건칠불과 닥종이 인형 그리고 민속공예 이야기’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후속작업도 하고 있다. 두 번째 책을 내기 위하여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조상들은 종이공예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염색을 어떻게 했는지 머릿속에만 있어야 되겠는가.

▲고려닥종이공예협회 전흥자 회장ⓒ시민기자 서상경

지금은 지방자치의 시대다. 우리 고장을 다른 지역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전주는 완산지라는 한지가 유명하다. 그로 인해서 한지로 유명한 고장이 되었다. 원주도 한지의 고장이다. 호접면에 종이를 뜨던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끈을 놓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안성의 바우덕이 축제는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로 발전해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중앙대학교가 안성으로 이전하면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옛날 문헌에 바우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만들었다. 아주 작은 것도 지역의 문화와 관련을 짓는다. 심지어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판이다. 우리 포천에는 닥밭도 있고 전통문화의 명장이 건재하다.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다. 그래서 제언한다. 우리 고장 포천에서 닥종이공예 축제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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