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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어제와 오늘! 옛 지명유래를 따라가본다(2탄)

시민기자 박광복


영북면 문암리(文岩里)는 신선봉에 문(文)자 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 문암골 또는 문암(文岩)이라 하였다.[출처: 포천의지명유래집]

문암리는 도로변에 둘러싸인 독특한 마을로 387번 지방도로 43번도로 양옆에 모여있다. 포천시의 도움으로 마을 울타리에 예쁘게 색칠하였고 카네이션 사업과 장례식장 음식 사업 등으로 활기찬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시민기자 박광복

김남수 이장님은 문암리 토박이로 세대 간 갈등과 이주민과 원주민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은빛아카데미 사업으로 웃음치료 등 수업을 진행하여 행복마을로 이끌고 있다.

문암리는 5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원주민 30%, 이주민 70%의 비율은 다른 시골마을 형태와는 확연히 다르다. 고령화와 원주민 어르신들의 부재로 옛 지명을 찾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문암리는 가운데말, 본말, 해방촌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북 피난민이 모여 이룬 마을 해방촌이 있다. 의시물은 혁장리 동쪽 마을로 군인 전사자를 화장한 화장터가 있었고 굴바위 동내라고도 했다. 5반은 특히 잣나무 군락지로 산적이 출몰했고, 아름드리 오리나무가 20여 그루 존재했었다. 지금은 잣나무 오리나무가 고사하여 흔적도 없어 문암리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

벌말에는 운천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있었던 마을로 문교리 또는 다리께 마을로 불렸다. 해가 질 때까지 햇빛이 잘 든다고 사양계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방정부에서 사양계 마을을 새롭게 조명해 보면 좋을 것이다.

ⓒ시민기자 박광복

종자루들, 봇물을 사용해 쉽게 농사를 지었다는 본논, 샘개 앞에 있는 샘개들, 가운데말 앞에 있는 앞고개들 정감이 가는 들녘이 많다.

불모산에는 승지골이 두 곳이 존재하고 있는데 미사일 부대 길목이고 금광이 있었던 새미기, 타일랜드 기념비가 있는 탑골, 산등성이 쇠시랑처럼 세 줄로 되어있어 쇠스랑가치, 소회산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성황당이 존재했었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 안방골, 양지바른 양지짝골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동화책처럼 엮어놓으면 좋겠다. 산정호수에서 내려오는 하천(부수천) 역사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을까?

여우골 이야기는 아는 이가 없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문암리 옛 지명 따라가기와 숨겨진 이야기는 원주민 부재로 지명 이야기나 유래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김남수 이장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해방촌 이야기, 음식, 그들에 삶은 문암리에 보물이고 역사임에 틀림없다. 이북 5도민의 애환과 그분들의 고향이야기, 가족이야기 흔적 등 아픈 역사도 우리 몫이고, 후손들 이야기도 우리가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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