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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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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에 입대한 아들 만나러 가는 일!

시민기자 이정식

코로나19 라는 겪어 보지 못한 시련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안타까움과 어려움, 슬픈 모습을 만들어 냈다. 사람은 살아 있는 생물이기에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밖에 나가기 무섭고, 되도록 움직이지 말라니 그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의 동선이 사라지면서 자영업은 고사 상태에 빠졌고, 그동안 당연하게 느껴지던 일상은 하지 말아야 할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한 달만 나오지 않고 집에만 있을 수 있다면 아마 코로나19 사태는 진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벌써 이 정도 거리두기에도 사람들은 불편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꼭 해야 할 일들은 중단없이 이어지고 있다. 군대도 그중에 하나다. 코로나19 상황이라 해도 누군가는 국경을 지켜야 하고, 적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둘째 아들도 입대했다. 1학기 내내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하다 혹 군대까지 늦게 갈까 봐 휴학 후 바로 입대할 수 있다는 해군으로 갔다.

포천이 고향이고, 이 근처를 크게 벗어난 적이 없는지라 나 역시 주변에 해군으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해군은 바다와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 주로 갈 것이다. 내륙의 한 가운데 있는 포천에서 해군을 다녀온 사람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 해군 훈련소가 있다는 진해가 그렇게 먼지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국토 끝에서 끝으로의 이동은 차가 밀리지 않아도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해군이 낯설기는 당사자인 둘째도 마찬가지다. 내려가는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는데 과연 낯선 그곳에서 훈련을 잘 받을지 부모로서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아무리 군대가 달라지고, 병사들의 권익이 향상되었다고 해도 내가 기억하는 군대는 역시 자유가 억압된 춥고, 배고픈 곳이다.

그런 아들이 당당하게 6주의 훈련을 무사히 잘 마쳤는데, 그만 코로나19 때문에 수료식에 갈 수도 없었고,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이 시기에 아들을 군에 보내 부모 모두의 고충이겠지만, 그 점이 무척 아쉬웠다. 물론 아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훈련소를 마치고, 다시 3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던 아들이 갑자기 외박을 허락받았다면서 와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 우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약속한 날짜에 진해로 향했다.

아들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부모를 기다릴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려가면서 생각해 보니 아들이 받는다는 후반기 교육 장소를 모른 채 우린 무작정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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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기자 이정식

우린 일단 아들이 입대할 때 들어갔던 해군 교육사령부로 갔다. 제대로 장소를 택한 것인지 우리 같은 입장의 부모와 친지들이 부대 밖에서 아들들이 나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대 안에서는 수백의 병사들이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와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외출증을 확인하는지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로 부대 밖으로 나왔다. 그 시간만 거의 한 시간은 기다린 것 같다. 기왕에 내보내 줄 것이면 그냥 안에서 한 번에 확인하고 한꺼번에 내보내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들이 나오기만을 이제나저제나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2ⓒ시민기자 이정식

아뿔싸 그런데 모든 병력이 나왔지만, 아들은 없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우리 아들의 주특기 부대는 여기가 아니란다. 이런~ 우린 관계자가 알려준 장소로 부리나케 차를 타고 이동했다. 가는 동안 내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맘고생을 했다. 휴대폰도 없는 아들과 연락할 일이 갑갑했다. 그런데 다행히 그곳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아들을 기다리다 드디어 상봉하게 되었다. 겨우 두 달여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뭔 호들갑이냐 할 수 있지만, 글쎄 이런 시기에 아들을 군에 보낸 심정도 그렇고,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되지 않던 아들을 만나니 그 감회가 정말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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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기자 이정식

99ⓒ시민기자 이정식

세일러복을 입고, 제법 군인 티가 나는 아들 덕분에 진해 시내 구경도 실컷 했고, 진해의 특산물도 잘 먹으면서 아주 잘 지내다 올라왔다. 이제 아들은 진해를 떠나 다시 먼 자대에 가 있다. 역시 시간이 흐르면 참 별것 아니다. 아마 아들이 고참이 되고, 제대하고 그러면 이때 당시의 일들은 작은 해프닝 정도로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이날 우리가 느꼈던 그 애틋함과 아들을 못 만나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도 어쩌면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이런 일도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언젠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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