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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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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땀 양식이 되다- 벼 베는 날
시민기자 유예숙

벼 벤다는 날 오후가 지나도 작업자가 오지 않아 다른 볼일도 못 본 채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늦은 오후 갑자기 벼를 벤다고 연락이 오고 논으로 향하는 기계 소리를 듣고 나왔다. 볏짚은 어떡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남편에게 물어보려 통화를 시도했지만 불통이다. 지난해에는 소먹이로 거두어 간다고 했는데 거둬가지 않아 처리하느라 힘들었던 남편을 생각하며 썰어 넣으라 했지만 개운치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려 달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남편과 통화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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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기자 유예숙

콤바인이 드르륵드르륵 벼를 베기 시작하니 벼 이삭은 사라지고 잘게 부서진 볏짚 부산물이 떨어지며 바퀴 자국을 덮는다. 콤바인이 작업하는 동안 일꾼에게 줄 음료수와 간식을 가져와 전했다. 기계 소리에 이웃집 아저씨가 와서 구경하다가 벼를 담을 커다란 자루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 또 난감했다. 이번에는 겨우 통화가 되어 물어보니 전화하던 그때 하필이면 배터리 충전 중이었다며 커다란 자루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자루를 준비해 두고 짚은 썰지 말고 깔아달라고 다시 요청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3© 시민기자 유예숙

벼 베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모내던 날이 떠올랐다. 아카시아 꽃향내가 바람을 타고 시집가던 날, 논 갈고 흙을 골라 밤낮으로 물을 퍼 올려 물을 댔다. 써레질하여 물컹한 흙을 가라앉히어 준비해둔 날이다. 한 달 전부터 볍씨를 파종한 모판을 한가득 실어와 필요한 모판 수만큼 논두렁 가에 늘어놓았다. 일 시작하려고 이앙기 시동을 거니 이앙기의 시동이 걸리지 않아 요리조리 살펴보고 만져보며 애쓰다가 도움을 청해 보기도 했었고, 흐르는 시간 아까워 계속 시도하다 이유도 모르게 걸린 시동에 안도의 숨을 쉬며 기쁨 반 걱정 반 모를 내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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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기자 유예숙

잘 자란 모를 가득 실은 이앙기는 달리며 논에 수를 놓듯 콕콕 콕 콕 박으며 탈 없이 잘 내나 싶더니 겨우 한 바퀴 내고는 모가 꽂히지 않아 중지했고, 반 정도쯤 내었다 싶을 때 이유도 모르게 시동이 꺼졌고, 거의 다 냈다 싶을 때 기름이 새고 떨어진 기름을 채우고 힘들게 모내기했던 날이었다. 힘들게 냈던 모가 잘 자라 달 반의 장마와 태풍에 시달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다행히도 잘 견뎌주었다. 작년 추수 때는 태풍피해로 쓰러진 벼 일으켜 세우기를 반복하느라 힘들었고, 그 벼 작업 해 달라는 말조차 하기 미안했는데 시작부터 기계가 꺼지는 말썽을 부려 애태웠던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거저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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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민기자 유예숙

“작년에는 아저씨가 작업했었는데 올해는 사위가 하네요”라고 말하니 “사위 아니면 농사일 못 하지, 너무 잘해” “물론 아들이 기계를 손본 줄 알아 다행이라고, 엊그제도 밤새 고쳤다며 말을 아끼셨다. 경운기 사고로 일을 못 하게 되었지만 농본기면 아들, 딸, 사위들 모두 모여 군말 없이 도와주는 가족의 아버지다. 그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작업하는 사위를 바라보는 눈빛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마음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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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추수사진  © 시민기자 유예숙

논바닥에 볏짚이 떨어지며 황금 카펫을 만드니 노을이 지며 어둠이 오기 시작하고 알곡을 모아 커다란 자루에 담아낼 때쯤 논 주인인 남편이 왔다. 커다란 자루를 잡아주는 남편에게 이웃집 사위가 말했다. "논 가장자리는 새가 다 먹은 것 같아요"라며 웃으니 그래도 "내가 더 먹을걸" 하고 말 받아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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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먹고, 긴 장마로 일조량이 부족해 줄었어도 하늘과 함께 짓는 것이 농사라고 하잖아 이 정도면 된 거지 뭐" 했다. 아침저녁으로 물꼬 걱정에 들렀던 수고로움의 땀을 생각하면 줄어든 수확이 야속했다. 올해의 농사가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우리는 양호하다며 택배 보낼 리스트나 작성하란다. 방아 찧기도 전에 나눔 생각하는 남편의 말에 '오!~예~ 역시 멋지다'로 나는 답했다. 아버지의 땀이 양식이 되는 날 가족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식탁에 오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안 가득 침이 고이며 기분이 좋아진다. 고마워요! 맛있는 밥 먹을 수 있게 해줘서...아버지들 노고에 감사함이 느껴지는 날, 집밥이 그리운 밥보 아들도 오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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