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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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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야기

ⓒ포천시

동장군의 위세에 눌려 이불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는 기상특보를 보고 바깥세상이 궁금해졌다.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유년시절의 겨울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겨우살이 준비에 여념이 없으셨다. 땔감과 식량, 자식들의 내복 등 살펴야 할 것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힘들고 큰일은 김장과 메주 쑤는 일이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콩이 안쳐지고 아궁이에 불이 붙여지면 콩대 타는 냄새가 콩 익는 냄새만큼이나 구수했다.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을 감싸 안으면 외양간의 소, 마루 밑의 강아지는 잔칫날인 양 침을 흘리고 게으른 눈을 깜박거렸다. 나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콩 솥엔 고구마가 들어있다. 콩과 함께 삶아진 고구마는 꿀을 발라놓은 듯 윤기가 흘렀다. 콩 맛이 밴 고구마는 껍질째 먹으면 더 맛이 있었다.

ⓒ포천시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메주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다. 서로 예쁘다고 칭찬을 한다. 어머니의 손에 의해 태어난 메주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예뻤다. 메주는 처마 밑의 고드름과 친구가 되어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며 겨울을 보낸다. 긴 겨울을 지루하지 않게.

콩 냄새가 채 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다시 김장준비를 하신다. 고추를 다듬어 가루를 빻고, 젓갈, 마늘, 생강 등 갖은양념까지. 김장독이 뒷마당에 묻어지면 왕소금도 가마니 째 마당에 나와 있다. 그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배추와 무. 고무장갑 없이 배추를 절구는 어머니의 손등에서 쩍쩍 배추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소금물에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을까! ‘김장은 겨울식량의 반이란다’시며 김장거리를 절이시던 어머니. 김장을 마치신 어머니는 그예 몸살을 앓곤 하셨다.

ⓒ포천시

김장은 긴 겨울 동안 우리 육남매의 유일한 반찬이 되었다. 삶은 고구마에 쭉쭉 찢어 걸쳐 먹던 배추김치와 얼음 동동 떠 있는 동치미 국물의 개운함은 잊을 수가 없다. 동치미 무의 맛은 또 어떤가? 쪼개진 무를 아작아작 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어떤 과일보다 더 달고 상큼한지를….

창밖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저 눈 속을 헤치며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었다. 빈 비료 포대에 끈을 매달아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신나게 타던 ‘비료 포대 썰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고무 다라이 썰매’로 바뀌면서부터 선머슴아 같던 나는 나이를 먹었고 그 나이만큼 조신해져야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된 것처럼 친구들과 나는 변해있었다. 긴 치마를 입고, 엄마 흉내를 내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그런 내가 얼마나 낯설고 어색했던지…. 되돌릴 수 없는 그 날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잠깐만이라도 ‘여섯 아이의 할머니’임을 까맣게 잊게 해준 함박눈! 저 눈을 보며 겨울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무척이나 그립고 보고 싶다. 친구들아 지금 어디에 살고 있니?

시민기자 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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