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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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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월급명세서를 보며

모처럼 집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영수증 뭉텅이를 발견했다. 족히 십 수 년은 된 예전 것들이다. 영수증들을 보고 있자니 지나간 내 인생의 흔적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참 그 시절엔 그랬지... 집 전화요금이나 전기요금을 직접 은행에 가서 납부하던 시절의 영수증들은 불과 20여 년 전의 내 삶의 흔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된 고서적을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다 분명 익숙한 것 같지만 너무나 낯선 문서 한 장을 발견했다. 1995년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의 월급명세서였다. 왜 이 영수증이 여기 있을까 싶었지만, 시골에서 갓 상경한 70년 대 시골청년의 얼굴처럼 새롭고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월급명세서를 이렇게 문서로 주었었다. 이메일이나 인트라넷이 아니라 사무원이 내 이름을 부르며 맞선 보는 여자처럼 급하게 손을 감추며 주었던 기억이 났다.

시간을 더듬어 생각해 보니 당시의 나는 갓 결혼한 새신랑이었고, 당시의 직장은 넉넉한 급여는 아니어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대학의 같은 과를 졸업한 친구들이 러시아나 중국으로 막 진출한다는 소리들을 할 때였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나 부러워 나의 직장을 무척이나 싫어하던 때였다.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정말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그 때 나는 승강장에서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며 팀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있고, 밤에 일하는 것이 싫다고 밤근무 없는 직장으로 가겠다고 다짐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 모든 것이 잠깐이다. 이십대 후반의 청년은 이제 나이 오십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지금 이 순간들도 언젠간 잡고 싶은 후회의 시간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나 결정이 후일 소회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직장을 2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다른 것은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 가지 상황만은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언젠가 팀 회식을 하고 과음한 다음날 이른 아침 근무를 하고 있는데 다른 팀의 선배가 말없이 따뜻한 캔 커피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와 나는 평소 말 한 마디도 나누지 않던 서먹한 관계였지만, 황망한 표정을 짓는 내게 그는 어제 술을 많이 먹었냐며 힘내라고 말해 주었다. 그와 나는 그 뒤로도 그렇게 살갑게 지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훈훈했던 상황만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어쩌면 다른 모든 기억보다 그렇게 따뜻한 추억으로 그곳을 기억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의 한 단면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무척이나 덥다. 이렇게 또 2015년의 여름이 내 옆을 지나간다.

시민기자 이정식(jefflee2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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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의견글 1
  • Kristiina 2015-08-25 삭제
    You condult pay me to ignore these po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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