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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의 특별한 모내기 현장

시민기자 박광복

 

화목하고 건강한 진성출, 신삼례 부부의 가족이 모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웃들과 친구들이 한두 명씩 찾아와서 막걸리 한 잔씩 하고 둘도 보고 갑니다. 두 사위가 발 벗고 나서서 모내기를 돕고 손주 손녀는 "할아버지 사랑해요"를 뿅뿅 날려줍니다. 트랙터를 타고 할아버지 일터에 오는 것을 좋아하는 손주, 손녀가 이앙기 운전석에 앉아서 기념촬영도 합니다.

ⓒ시민기자 박광복

서예마을에 복덩이 손주, 손녀가 사랑을 듬뿍 전해줍니다. 오후에는 여동생과 매제가 양주에서 손주 손녀 데리고 인사를 왔습니다. 이웃 농가에 모내기하시는 어른들께도 인사도 하고 간식도 챙겨줍니다. 여동생은 어려서 부터 병든 아버지를 챙기는 효녀였답니다. 효녀 여동생은 냉정리 벌판에 아이들 웃음꽃을 한가득 심어 주고 돌아갔습니다.

진성출, 신삼례 부부의 가족들이 초과2리 냉정리 벌판에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주고 모내기를 합니다. 특별한 가족에 모내기는 내일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내일이 기대됩니다.


[두 부부 이야기]

ⓒ시민기자 박광복

손꼽히는 명문가도, 명문 대학을 졸업한 부부도 아니였지만 특별한 정으로 행복 가득한 명문가로 태어났습니다. 부산 처녀와 포천 총각이 중매로 만나 지금도 행복을 키우고 있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명문가를 이뤘습니다.

80년대 생활은 어느 가정이나 삶이 버겁고 자녀를 키우는 것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한탄강 합수터에 작은 식당으로 살아가던 중 한탄강 댐 공사로 삶의 터를 내줘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때는 한탄강 댐 결사반대라는 명분으로 삶 터를 지켜야 했고 부부는 투쟁의 선두에서 고달픈 싸움을 했습니다. 그때는 친구가 있었고 명분도 확실했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지겠다는 투쟁이었습니다.

ⓒ시민기자 박광복

하지만 터전을 떠나 초과2리에 집을 짓고 냉정리에 땅을 사서 농부로 돌아왔습니다. 농기계 운전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경운기, 트랙터, 이앙기를 먼저 사서 농사를 마음잡고 짓도록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부인은 중리교회에서 장로님으로 봉직하며 관인 지역에서 이십여 년 미용 봉사와 보험 일도 기꺼이 해내는 또순이 엄마랍니다.

ⓒ시민기자 박광복

1남 2녀의 자녀들은 보모를 보고 배워서 요즘 젊은 사람보다 성실하고 똑똑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압니다. 이 가정에 따님들은 남편을 따라 독립생활 대신 부모님 곁으로 모여 생활하며 대가족을 이루는 복 많은 가정을 이뤘습니다. 서로 끈끈하게 뭉쳐지고, 함께 보듬어 안고 사는 괜찮은 대가족입니다. 지금처럼 사는 것이 어색하지도 조바심도 느끼지 않아 보입니다.

ⓒ시민기자 박광복

마당 한편에 동물농장도 만들어 여러 종에 동물들이 한가득합니다. 손자 손녀가 동물농장에서 맘껏 뛰어놀도록 장인과 사위들이 함께 만든 가족입니다. 초과2리 서예마을에 아이들 울음소리 들려주고, 최연소 주민 등록도 했습니다. 막내 아들은 잠실에서 개인 사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 가족은 서예마을의 자랑이고 관인면에 자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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